대한민국에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것은 일시적 가격 급등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중간소득 가구가 중간가격 주택을 사려면 연소득의 약 10배를 모아야 하고, 고가 구간으로 가면 그 배수는 수십 배로 뛴다. 서울 주택보급률은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돌고, 가구 분화 속도가 신규 주택 증가를 앞지른다. 전셋값도 서울 아파트 평균 7억 원을 넘겼다. 매매·전세·월세가 함께 오르는 3중 부담이 실수요자의 사다리를 끊고 있다.
문제는 전국이 아니라 원하는 곳의 집이 부족한 구조다. 수도권에는 일자리·교육·의료·문화가 몰리고, 지방에는 미분양이 쌓인다. 사람은 줄어도 1·2인 가구는 늘고, 서울은 연간 가구 증가가 주택 증가를 앞질러 누적 부족이 커진다. 공급이 부족한 핵심지에서 가격이 오르면, 그 기대가 다시 매수 심리를 자극한다. 대출 규제와 세금은 단기적으로 거래를 줄이지만, 입주 절벽과 정비사업 지연이 겹치면 전세가 먼저 오르고 매매가 뒤따른다. 착공·인허가 감소가 수년 뒤 입주 부족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이클이다.
정책은 자주 바뀌었고, 시장은 그 예측 불가능성에 반응했다. 수요 억제는 고가 주택의 거래와 대출을 조이지만, 중저가·역세권으로 수요를 밀어 올려 가격이 안 잡히고 주거비만 오르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다주택 매물이 나와도 실거주 요건과 전세 물량 감소가 겹치면 임대차 시장은 더 빡빡해진다. 공급 약속이 입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시장은 이미 학습했다.
이제 앞으로의 변수를 같은 저울에 올려야 한다.
금리. 기준금리가 다시 오르고 주담대 금리도 상승 압박을 받는다. 금리 인상은 구매력을 깎고 고가 주택의 조정 압력을 키운다. 그러나 공급 공백이 큰 핵심지에서는 금리가 가격을 충분히 끌어내리지 못할 수 있다. 전세·월세가 먼저 오르면 실수요자는 매수와 임차 사이에서 더 불리해진다. 가계부채 관리와 주거 안정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금리를 물가·환율 대응 수단으로 쓰되, 실수요 대출은 소득·상환능력 중심으로 예측 가능하게 유지하는 편이 낫다. 금리로 집값을 직접 누르려 하면 공급과 주거복지가 함께 무너질 위험이 있다.
자율주행. 상용화가 진전되면 역세권=절대가치 공식은 약해질 수 있다. 이동 시간이 노동·여가로 바뀌고, 주차 수요가 줄면 도심 주차장과 저밀도 부지가 주택·공원·물류로 전환될 여지가 생긴다. 교외와 신도시의 접근성 프리미엄은 상대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다만 한국은 학교·직장이 여전히 특정 권역에 몰려 있어, 자율주행만으로 서울 핵심지 수요가 급감하진 않는다. 정책적으로는 주차 기준 완화, 로봇·발렛 주차 제도화, 주차장 용도전환을 정비사업과 묶어야 한다. 기술이 공간을 늘려주는 경로를 열어줘야 공급 비용을 낮출 수 있다.
AGI와 일자리. 사무·전문직의 일부 과업이 자동화되면 고소득 직종의 지리적 집중이 흔들릴 수 있다. 원격근무와 프로젝트형 고용이 늘면 매일 출근하는 강남·여의도 수요는 약해지고, 주거 선택 기준이 직장 거리보다 생활 인프라·주거비·디지털 인프라로 이동할 수 있다. 동시에 AI·데이터센터·반도체 등 새 산업은 특정 입지에 고급 주거 수요를 다시 모은다. 단기에는 청년 채용 둔화가 구매력을 깎고, 장기에는 소득 양극화가 주택 수요 양극화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 주택정책만으로 막을 수 없는 영역이다. 직업훈련, 지방 앵커 산업, 원격근무가 가능한 공공서비스가 주거 수요의 분산 조건을 만든다. 가까운 장래의 AI 대체 효과는 전면 실업보다 선택적 자동화에 가깝다는 연구도 있다. 과장된 붕괴론보다, 소득 불확실성에 대비한 임대·지분적립형 주거가 현실적이다.
초고층·고층 재건축. 서울 신규 공급의 상당 부분은 정비사업에 의존한다. 그런데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초고층은 랜드마크에서 분담금 폭탄으로 바뀌고 있다. 일반 층수와 50층 이상 초고층은 피난층, 구조, 소방, 코어 단면이 달라 단가가 크게 뛴다. 용적률을 올려도 공사비와 금융비용이 인센티브를 상쇄하면 사업은 멈춘다. 멈춘 재건축은 철거 전 이주 수요만 키워 전세를 자극한다. 초고층을 목표로 두지 말고, 사업성·공기·입주 물량을 목표로 둬야 한다. 안전진단 완화, 용적률 인센티브, 초기 사업비 지원은 필요하지만, 층수 경쟁을 부추기면 공급이 아니라 비용만 늘어난다.
객관적으로 가능한 해법은 한 방의 대책이 아니라 시간축을 나눈 조합이다.
단기에는 입주 절벽을 메울 임대 물량, 실거주 실수요의 대출 예측 가능성, 전세 사기와 보증 리스크 관리가 우선이다. 세금은 투기 억제와 매물 유도를 구분해야 한다. 실거주 1주택과 비거주·다주택을 같은 칼로 자르면 전세 공급만 줄어든다.
중기에는 원하는 곳의 공급을 실제 착공으로 바꿔야 한다. 인허가 병목, PF, 공사비 분쟁을 표준 계약과 공공 보증으로 줄이고, 토지임대부·지분적립형처럼 초기 자본을 낮추는 모델을 수도권에 확대해야 한다. 수도권에만 집을 더 짓는 것과 지방에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대립이 아니라 병행 과제다. 전자만 하면 수요를 더 끌어들이고, 후자만 하면 당장의 주거난을 방치한다.
장기에는 기술 변수를 도시계획에 넣어야 한다. 자율주행과 주차 로봇은 용적과 주차 의무를 재설계하는 기회다. AGI는 직주근접의 의미를 바꾸고, 주택을 소유 자산에서 주거 서비스로 일부 이동시킬 수 있다. 그때를 대비해 공공이 토지를 비축하고, 재건축은 초고층 상징보다 표준화된 중고층·모듈러·스마트 시공으로 단가와 공기를 낮추는 편이 맞다.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이유는 국민이 집을 너무 원해서가 아니다. 일자리와 기회가 한곳에 몰리고, 그곳의 집은 늦게 지어지며, 금융과 규제는 자주 바뀌고, 미래 기술은 아직 공급 비용을 낮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리로 수요를 억누르고, 초고층으로 공급을 과시하고, AGI로 수요가 사라질 것이라고 미루는 태도는 모두 현실과 어긋난다. 필요한 것은 부풀리는 기대가 아니라, 입주 가능한 집을 제때 늘리고, 소득 변동에 버틸 임대와 부분소유를 키우며, 수도권 집중의 비용을 국토 전체의 기회로 나누는 일이다. 집이 자산 게임의 트로피가 아니라 노동과 삶의 기반이 될 때, 내 집 마련은 다시 계산 가능한 목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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